<내가 받은, 편지 아닌 편지>
3월, 아직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오래 걸으면 코가 찡할 정도였다.
나의 왼쪽에서, 옆인 듯 살짝 앞서 걸어가는 너의 파란색 소매를 예고도 없이 붙들고 싶어진 것이 3월이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일주일에 세네번은 보는 사이가 되었다. 아침 저녁으로 일어나고 잠드는 이야기를, 오늘은 뭘 먹었고 누구랑 다퉜고 하는 작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3월이 다 지나갈 때까지 나는 매일 추워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다녔지만, 몇 번이고 옆에서 옷을 벗어 입혀주는 네가 있어서 다시 등을 곧게 펴고 신나게 걸을 수 있었다.
이렇게 행복한 일을 그동안 왜 안 했을까 싶을만큼, 너와의 매일이 즐거웠다. 내가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 느낌이었다. 너와 다시는 보지 못 하게 될 뻔 했던 그날 밤은,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날이기도 했다. 그동안 읽고 보고, 들어서 알던 연애는, 연인간의 사랑은 항상 행복하고 달콤한 것이었는데, 내 것은 종종 쓴 맛도 나고, 짠 맛도 났다.
어느 날의 밤은, 마음이 애닳아 아침이 올 때까지 이 밤을 어떻게 다 보내나 하고 한숨만 내내 내리쉬기도 했다.
크게 싸우고 함께 서촌에 맥주를 마시러 갔던 날에, 좋아하는 모찌리도후를 앞에 두고 너는 내게 말했다.
나는 사랑 받는 느낌 같은 거 잘 모르겠더라고. 물론, 사랑해주면 아, 사랑해주는구나 알지, 그걸 모른다는 건 아닌데, 아무튼 그래도 잘 모르겠어.
아니, 나는 알게 됐다. 너는 사랑 받을 줄 안다. 사랑 받아 마땅한 사람으로서, 사랑 받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내가 나 스스로도 내 마음을 어쩔 줄 몰라 쩔쩔매면, 재밌다는 듯이 깔깔대며, 그러나 감사하게, 받아준 것이 너다. 재거나 따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나에게 각인시켜준 것이 너다. 너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사랑 받을 줄 아는 사람.
물론, 나에게도 수십가지나 있는 단점이, 너에게만 없을 리 없고,
내게 소리높여 짜증내는 모습, 다치는 게 두려워 먼저 상처주려는 너
를 보며 나는, 내가 이런 모든 것을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인가, 우리가 그만큼의 사랑을 비축해 두었나 고민도 했다.
그러나, 이미 나는 네가 사랑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아버렸다.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아버렸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밉고, 싫고, 화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부분을 그대로 찔리면서도 안고 갈 수 있을 만큼, 나는 네가 좋다.
7월, 아직 초여름의 문턱이지만, 가끔은 숨이 막힐만큼 덥다.
추워서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던 나에게,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 입혀주었던 서울숲 1번 출구 앞에서의 기억을 떠올린다. 다시 서울숲에 가자. 자전거를 타며 바람을 만들어 맞자.
사랑 받아 마땅한, 나의 소중한 사람.
그림은 나라 요시토모
<카메라가 되어 써준 내 여자친구 눈 앞 풍경 - 에피소드1, 603호>
조명을 켜지 않아 약간 어둑어둑하다. 흰 벽을 시작으로 긴 나무 책상이 놓여있다. 책상 가장 왼쪽에는 모니터 하나가 비스듬히 놓여있다. 모니터 상단에는 VIEW220이라는 흰색 글자가 쓰여있고, 모니터 하단부 가운데에는 VIEWSYS라는 글자가 상단부와 마찬가지로 흰색으로 쓰여 있다. 모니터 앞에는 흰색 선들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그 앞에는 회색 주머니 하나가 놓여있다. 주머니 앞에는 아메리카노가 탐탐 전용 유리잔에 8분의 1쯤 담겨있다. 책상 중간에는 무엇이 놓여있는지 알 수 없다. 중간에는 흰색 등받이 의자에 회색과 흰색 스트라이프 무늬 커버를 씌운 방석을 깔고 앉아있는 사람 한 명이 있다. 이 사람은 크림색 반팔티를 입고 미간을 만지고 있다. 다리는 보이지 않고 양 쪽 발은 의자의 검은색 프레임 위에 걸쳐 두었다. 앉아있는 사람의 오른쪽 옆으로는 민트색 안마기 손잡이가 보이고, 그 대각선 앞으로 원목 명함케이스 안에 명함이 소복히 쌓여있는 걸 볼 수 있다. 명함 케이스를 기준으로 뒤쪽에는 회색 맥북 케이스와 파란색 계산기가 놓여있고, 앞에는 Light Note라고 쓰여져 있는 연습장, 연습장 위에 놓여있는 회색 파일, 파일 위에 놓여있는 정체불명의 검은색 주머니, 주머니 위에 놓여진 약이 들어있는 비닐팩이 보인다. 책상이 끝나는 지점에는 각각의 색과 무늬가 인도를 연상케 하는 담요가 등받이가 있는 철제 원형 의자 위에 씌워져 있다. 의자 옆으로는 옅은 회색의 러그가 깔려 있다.
그림은 나라 요시토모